미국 정착기 – 첫 응급실
미국에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와이프가 버섯을 먹고 갑자기
혀가 마비되는 것 같은 증상을 느꼈다.
순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911.
그런데 정작 전화를 걸려니 망설여졌다.
미국 응급차 비용이 비싸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던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증상이 심각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비용부터 걱정했던 게 참 미안하다.
더 황당한 건 바로 근처에 응급실이 있었는데도
회사 보험과 연계된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휴대폰으로 병원을 검색하며 시간을 조금 허비했다는 것.
결국 보험이 되는 병원을 찾아
구급차 대신 내가 직접 운전해서 갔다.
다행히 이동하는 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와이프의 증상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고,
병원에서는 검사를 받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하나 있었다.
와이프가 그전부터 조금 불편해하던 허리까지
갑자기 좋아졌다는 것. 😂
그리고 며칠 뒤 날아온 병원비.
약 $5,000.
미국 의료 시스템을 제대로 체험했다.
당시 보험이 High Deductible Plan이어서
그 한 번의 응급실 방문으로 그해 부담해야 할 금액을 거의 채웠다.
그래서 우리는 농담처럼 말했다.
“이제 올해는 아프면 병원 마음껏 가도 되겠네.”
그런데…
그 이후로 그해 남은 기간 동안
우리 네 가족 모두 너무 건강했다.
병원을 단 한 번도 안 갔다. 😂
지금 생각하면 웃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처음 미국에 와서 보험도 병원도 911도 낯설었던 나에게는
꽤 긴장됐던 하루였다.
그리고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와이프에게 조금 미안하다.
응급상황에서는
보험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걸
미국 생활 한 달 만에 제대로 배웠다.